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가?”
우리는 오랫동안 이 질문을 받으며 살아왔다. 학생에게는 장래 희망을, 청년에게는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 물었다.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어느 조직에서 어떤 위치까지 성장할 것인지가 커리어의 중요한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직업이나 직무만으로 긴 삶의 커리어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다. 기술은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직무가 등장하는 동시에 기존 직무의 내용도 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확산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빠르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커리어를 바라보는 질문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와 함께 “나는 경험을 통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필자가 이야기하는 ‘커리어 가소성(Career Plasticity)’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커리어를 이미 결정된 하나의 경로나 직업의 연속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학습, 성찰과 재해석을 통해 계속 변화하고 재구성될 수 있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뇌의 ‘가소성’에서 커리어에 관한 질문을 발견하다
가소성(plasticity)은 외부의 영향이나 경험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성질을 의미한다. 특히 뇌과학에서 신경가소성은 경험과 학습 등에 따라 뇌의 신경 연결과 기능이 변화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필자는 뇌기반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이 개념을 접한 뒤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사람의 뇌가 경험과 학습을 통해 변화한다면, 한 사람의 커리어 역시 경험을 통해 계속 재구성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뇌의 가소성과 커리어 가소성이 동일한 과학적 현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커리어 가소성’은 뇌과학의 가소성 개념에서 착안해 인간의 경력 변화와 성장을 바라보기 위해 필자가 발전시켜 온 개념적 관점이다.
우리는 흔히 입학, 취업, 승진, 이직, 퇴직처럼 이력서에 기록되는 사건을 커리어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직장을 옮기지 않아도 커리어는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이해할 수도 있고, 실패라고 여겼던 경험에서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서로 관계없어 보였던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 하나의 전문성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경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연결될 수 있다
커리어 가소성은 단순히 ‘변화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자신을 수동적으로 맞추는 것만을 뜻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경험과 역량, 관심과 학습을 살펴보고 그것들의 의미와 연결 방식을 다시 구성하면서 커리어의 가능성을 확장해 가는 과정에 가깝다. 여기에는 경험, 학습, 성찰, 재해석, 연결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모든 경험이 저절로 커리어의 자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살펴보고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고 흩어진 경험을 연결할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가능성이 나타날 수 있다.
전공과 다른 일을 한다고 대학에서 배운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력이 중단됐다고 이전의 경험까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계획했던 일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문제 해결 경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에만 있지 않다.
“이 경험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이 경험을 앞으로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가.”
커리어 가소성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이미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계속 편집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데 주목한다.
정답을 찾는 커리어에서 변화할 수 있는 커리어로
그렇다고 모든 실패를 성장으로 포장하거나 누구나 원하는 커리어를 만들 수 있다는 낙관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커리어에는 노동시장과 조직 환경, 경제적 조건, 돌봄과 가족 등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무엇을 새롭게 배울 것인지, 이미 가진 역량을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 것인지에는 탐색의 여지가 있다. 커리어 가소성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가능성이다.
필자는 그동안 커리어온뉴스에서 약 50회의 칼럼 연재를 통해 커리어 가소성에 관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경험과 글쓰기, 자기이해와 경력 변화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살펴봤으며, 그동안 발전시켜 온 생각과 논의를 확장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관련 저서는 현재 예약판매 중이다. 책의 출간은 커리어 가소성에 대한 논의를 끝내는 지점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시작하는 지점에 가깝다.
변화가 일상이 된 시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만큼 자신의 경험을 다시 바라보고 배우고 연결하며 변화한 자신을 이해하는 힘도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커리어에 관한 익숙한 질문 옆에 하나의 질문을 더 놓아본다.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변화해 갈 수 있는가?”
커리어 가소성은 그 두 번째 질문에서 시작한다.
박소영 | 커리어온뉴스 편집장 · 『커리어 가소성』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