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다예 칼럼] AI보다 못한 인간이 되는 순간: 공부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

외우는 인간 vs 생각하는 인간, 누가 살아남는가

공다예 | 신라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겸임교수 · 아트리샤 스튜디오 대표

 

마주 선 사유: 정답의 기술 앞에서 인간의 질문을 묻다 이미지 출처: AI 생성 

 

당신이 10년 동안 공부한 것을 AI는 10초 만에 끝낸다

이 문장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검색창 대신 AI에게 질문하고, 보고서 대신 생성된 결과를 받아보며, 심지어 창의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던 문학적 글쓰기까지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전환기 앞에서 우리는 본질적이고도 불편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이전의 교육 패러다임에서 공부는 ‘방대한 지식의 내재화(Internalization)’를 의미했다. 더 많이 외우고 더 정확하게 인출(Retrieval)하는 이들이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평가는 기억력과 정보 보유량의 경쟁이었고, 고등교육기관은 그 결과의 지표였다. 그러나 지금, 이 견고했던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지치지 않으며, 망각하지 않고, 무엇보다 압도적인 속도로 연산한다.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이라는 자산은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고도화된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보다 더 체계적으로 정보를 구조화하는 주체가 등장했다. 이제 논의의 중심축은 이동해야 한다. “무엇을 아느냐(Know-what)”가 아니라, “어떻게 사유하느냐(Know-how & Why)”로.

 

지식 전달 시스템으로서의 교육, 그 기능적 수명의 도래

근대 교육은 오랜 시간 효율적인 ‘지식 전달 시스템’으로 기능해 왔다. 산업혁명기에는 표준화된 노동 인력이 필요했고, 교육 공학 역시 그 요구에 맞춰 설계되었다. 기정의된 정답을 신속하게 도출하는 능력, 주어진 선형적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하는 수렴적 사고가 핵심 역량이었다.

이 구조는 국가 경제 성장과 고용률 제고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현재 지식 기반 사회의 구조적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과거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던 데이터 분석, 번역, 학술적 텍스트 요약 등의 과업을 거대언어모델(LLM)이 인간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수행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말뭉치(Corpus)와 문법 체계를 학습하여 정교한 문장 구조를 생성해 내는 현 시점에서, 단순히 ‘텍스트와 지식을 많이 보유하는 것’은 더 이상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도구의 등장을 넘어, 교육의 궁극적 목적성과 존재 이유를 재정의해야 하는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시사한다.

 

인지 능력의 재편과 질문의 시대

변화의 징후는 이미 거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진 교육 현장에서는 정량 평가 위주의 암기식 시험을 지양하고, 학습자 중심의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과 비판적 탐구 프로세스를 확대하는 추세다. 기업 생태계 역시 전통적인 학벌이나 학점의 영향력을 줄이고, 실질적인 포트폴리오와 복합적 문제 해결 경험(Complex Problem Solving)을 중심으로 채용 기틀을 재편하고 있다.

교육학 및 인지과학 전문가들은 이를 ‘인지 능력의 재편’ 과정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핵심 역량이 정보를 뇌 내에 저장하는 ‘기록 능력’이었다면, 이제는 도처에 산재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융합하는 ‘맥락적 인지 능력’이 요구된다.

즉, 미래 사회는 ‘질문의 시대’다. 인공지능은 기계습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답을 출력하지만, 가치 있는 질문을 구성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고유한 사유 영역이다. 어떠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도출되는 결과물의 질적 수준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술적 의존도 심화에 따른 ‘사유의 외주화’를 우려한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결과물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인간의 심층적 비판 사고력(Critical Thinking)이 퇴화하고 정보의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다. 결국 핵심은 AI 활용 역량과 기계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 사유 능력 사이의 ‘균형적 인지 발달’에 있다.

 

정답의 시대에서 문제 정의(Problem Framing)의 시대로

기존의 주입식 교육 방식은 AI 시대에 명확한 한계를 노출한다. 단기 기억에 의존해 외운 지식은 평가가 종료됨과 동시에 휘발되며, 그 지식의 정확성은 이미 AI의 데이터베이스를 능가할 수 없다. 기계와 동일한 방식으로 암기하고 경쟁하려 하는 한, 인간은 구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교육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기계적 연산이 불가능한 인간 고유의 영역, 즉 창의적 수평 사고, 비판적 분석, 그리고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Problem Framing)’에 집중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주어진 맥락 속에서 최적의 최적화 경로를 찾아내지만, ‘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 판단과 목적 설정은 하지 못한다.

인간은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며, 감정과 사회적 관계성을 읽어내는 다차원적 지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맥락적 통찰은 단편적인 데이터 습득이 아닌, 깊이 있는 사유의 축적과 상호작용적 경험을 통해서만 체득된다. 따라서 미래 교육은 지식의 양적 축적(Accumulation)이 아닌, 사유의 질적 훈련(Cultivation)으로 전면 이행되어야 한다.

 

미래는 정답이 아닌 질문이 견인한다

인류는 지금 중요한 문명사적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관성대로 정답만을 쫓는 학습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기계를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사유의 경로를 개척할 것인가.

인공지능의 진화 속도는 기하급수적이며, 앞으로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이 거대한 기술적 조류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기계와 확연히 구분되는 고유한 존재론적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미래는 단순히 ‘정답을 잘 맞히는 기능공’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지는 사상가’들이 이끌어갈 것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과 공부 방식은 그 본질적인 궤도를 향해 가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과거의 잔영 속에 머물러 있는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스스로 구축한 기술의 그림자 아래 사유 능력을 상실한 ‘인지적 종속 상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성 2026.05.19 22:31 수정 2026.05.3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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